촛불운동의 성공과 한계

초고:

2017년 3월 10일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되었다. 20주동안 매주 토요일 광화문에 열었던 촛불 집회가 대성공을 이루었다. 촛불 집회의 시작에는 박 대통령을 탄핵 시키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는데도 긍극적으로 한명도 죽지 않고 평화로운 운동을 통해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촛불운동이 대성공 한 요인이 무엇인가? 그리고 이 운동 끝에 한국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

한국의 촛불 집회가 2016년 10월에 시작 되었는데 그 전에도 촛불 집회의 기초가 된 운동이 있었다. 첫 촛불 집회가 열기 2년반 전에 2014년 4월 16일에 정기 여객선 “세월호”가 뒤집어져 침몰 했고 476명의 승객자중 304명이 죽었다. 사망자의 태반은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로 가는 단원고등학생 이었고 한국의 시민 모드 심격을 받고 슬퍼 했다. 경기도에서 전라남도까지 달려간 가족들이 구조를 간청을 했지만 7시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무 말도 지시도 주지 않았고 연안경비대도 근처에 있었는데도 구조할 수 있었던 피해자가 적었고 연안경비대 보다도 민간인이 운항한 배가 더 많은 사람을 구조했다. 사건후에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한테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고 한 박근혜 대통령이 나중에 만나는 것 조차 하지 않았고 세월호에 대해 대중 앞에서 말을 한 기자나 작가들이 박근혜 정부가 비밀로 만든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촛불 집회가 세월호 사고와 세월호 유가족들이 시작한 운동을 기초로 해서 시작 된 것 이다. 세월호가 모든 한국사람의 공감을 끌어 냈고 민족적인 각성을 시켰고, 박근혜 정부에 대한 의심을 만들었다. 이런 공감과 의심을 필두로 촛불 집회가 아주 평화로운 운동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공감을 느낀 시위를 계획한 조직자들이 모드가 안전히 참여할 수 있는 집회를 만들었다. 한국역사에 일어난 시위들과 달리 작은 아이부터 나이 많으신 분까지 참여 할 수 있게 경찰과의 싸움도 폭력도 없도록 많은 노력을 했다. 이런 평화로운 시위에 수 백 만명도 참여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위의 조직자들 뿐만 아니라 경찰들도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한 공감을 느꼈기 때문에 시위를 중단 시키려고 안한 것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촛불 집회가 생각 못했던 만큼 대성공적인 운동이 되었다. 집회가 성공을 할 수 있었던 요인은 세월호에서 시작된 민족적인 각성이라고 생각을 한다. 각성을 한 한국의 민족들이 강하고 평화로운 집회를 통해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편집판:

2017년 3월 10일에 박근혜 大統領이 탄핵 되었다. 20주동안 매주 토요일 광화문에 열렸던 촛불 집회가 대성공을 이루었다. 촛불 집회의 시작에는 박 大統領을 탄핵 시키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는데도 궁극적으로는 한명도 죽지 않고 平和로운 운동을 통해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촛불운동이 大成功 한 요인이 무엇인가? 그리고 이 운동 끝에 韓國사회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

韓國의 촛불 집회는 2016년 10월에 시작 되었는데 그 전에도 촛불 집회의 기초가 된 운동이 있었다. 첫 촛불 집회가 열리기 2년반 전에 2014년 4월 16일에 정기 여객선 “세월호”가 뒤집어져 침몰 했고 476명의 승객자 중 304명이 죽었다. 死亡者의 태반은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로 가던 단원고등학생이었고 韓國의 시민 모두 충격을 받고 슬퍼했다. 경기도에서 전라남도까지 달려간 가족들이 구조를 간청 했지만 7時間동안 박근혜 전 大統領은 아무 말도 지시하지 않았고 근처에 있던 연안경비대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아서 오히려 민간인이 운항했던 배가 더 많은 사람을 구조할 수 있었다. 또한 사건 후에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한테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고 한 박근혜 大統領이 나중에 만나는 것조차 하지 않았고 세월호에 대해 지지를 한 기자나 작가들은 박근혜 政府가 비밀로 만든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즉, 촛불 집회는 세월호 사고와 세월호 유가족들이 시작한 운동을 기초로 해서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세월호가 모든 韓國사람의 공감을 끌어 냈고 사회적인 각성을 시켰으며, 박근혜 政府에 대한 의심을 만들었다. 이런 공감과 의심을 필두로 촛불 집회가 아주 平和로운 운동이 되었고 이런 공감을 느낀 시위를 계획한 지도자들이 모두가 안전히 참여할 수 있는 집회로 이끌었다. 과거의 시위들과 달리 이번 촛불집회에서는 작은 아이부터 나이 많으신 분까지 참여 할 수 있었고 경찰과의 싸움이나 폭력이 없도록 모두가 많은 노력을 했다. 이런 平和로운 시위에 수 백 만명이 참여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집회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위의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경찰들도 세월호 유가족들에 공감을 느꼈기 때문에 시위를 중단 시키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촛불 집회는 기대 이상으로 大成功적인 운동이 되었다. 집회가 성공을 할 수 있었던 요인은 세월호에서 시작된 사회적인 각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성을 한 韓國의 민족들이 강하고 平和로운 집회를 통해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시위를 참여했던 모둔 시민들이 바라는 더 밝고 친절한 사회를 이루도록 촛불집회의 평화로운 힘으로 계속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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